서기가 직업이었던 하멜이 기록한 조선(13년)과 일본(1년)의 가장 큰 차이점

 

8월 15일 바람이 너무 심해서 갑판 위에서는 서로의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으며 작은 돛조차 올릴 수가 없었다. 

배가 심하게 요동치고 집채만 한 파도가 연이어 우리를 덮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갑자기 바위에 부딪쳐 정신을 읽고 만다. 

그 아름답던 배는 산산조각 나고 64명의 선원 중 불과 36명만이 살아 남았다. 

하멜과 그 일행은 첫번째로 죽은 동료를 묻어주었다. 

그리고 밀가루 한 포대, 고기 한 통, 베이컨과 붉은 스페인 산 포도주가 들어 있는 나무통만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무장한 100명의 군인들에게 둘러쌓이게 된다. 그리고 하멜은 일행은 목에 쇠살이 감겨지고 끌려가게 된다. 

그 지휘관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물었으나 알아들을 수 없없다. 하멜은 "야판! 나가사키!"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야판을 왜나라 혹은 일본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하멜이 도착한 곳은 바로 신비의 나라 조선이였고 제주도였던것입니다. 

 

하멜은 감금이 되고 그러다가 어떤 조선인 복장을 한 붉은 수염과 파란 눈의 남자가 오게 된다. 그가'어떤 사람'인지를 물어 봐서 우린 '우리와 같은 네덜란드 사람'이라고 대답했더니, 총독이 웃으며 하멜에게 그는 조선사람이라고 손짓 발짓으로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하멜이 그 파란눈의 조선인 복장을 한 관리에게 당신 네덜란드 사람 아닙니까 물으니 그 사람이 더듬더듬 말을 했다. 바로 그는 얀 얀스 벨테브레 (조선이름 : 박연)이였다. 

 

박연(Jan Jansz Weltevree, 네덜란드) 하멜보다 27년 먼저 표료한 사람으로 조선에 귀화한 최초의 유럽인. 1627년 일본으로 향하던 중 제주도에 상륙하였다가 체포. 귀화 후 훈련도감에서 근무하며 병자호란에도 참전. 화포의 제작법과 조종법을 지도함. 

 

 

박연은 30년동안 조선에서 생활하면서 네덜란드 모국어를 더듬더듬 하는 상태였다. 

하멜은 박연에게 "우리 이제 돌아갈수 있습니까?" 하지만 그는 우리를 위로하며 왕을 만나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했다. 왕은 항상 '당신이 새라면 그곳으로 날아갈 수 있겠지만 우리는 외국인을 나라 밖으로 보내지 않는다. 당신을 보호해 주겠으며 적당한 식량과 의복을 제공해 줄테니 이 나라에서 여생을 마치라.' 대답하면서 거절했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희망 제주 목사 이원진 

이원진은 하멜일행을 매우 잘해줬다고 한다. 이원진은 하멜에게 쌀, 고기 보다 더 값진 희망을 먹여줬다고 한다. 

제주 목사는 '답신이 곧 올 것이며 좋은 소식이 와서  우리가 일본으로 보내질 것'을 바란다며 매일 우리를 격려해 주었다. 왕의 서신은 오지 않고 하루 하루 세월은 간다. 그리고 이원진 목사는 다른 곳으로 부임해 가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목사 놈이 오게 된다. 이 새로운 목사는 쌀대신 보리를 주고 밀가루를 보리가루로 주게된다. 그래서 하멜은 보리만 먹고 살수 없으니 보리가룰 팔아서 반찬을 사게 된다. 그리고 탈출할 마음을 갖게 된다. 탈출을 시도한 하멜의 일부 일행은 곤장을 25대를 맞게 된다. 그 시대의 곤장은 10대만 맞으면 엉덩이 살이 다 뭉게 지고 11대부터는 뼈부딪치는 소리가 난다고 한다. 그렇게 25대를 맞고 그들은 한 달 정도를 누워 생활해야 했다. 

 

아무튼 하멜은 효종을 만나게 된다. 

효종은 아버지는 인조로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항전 하다 45일만 청나라에 항복하고 머리 박은 왕이다. (삼전도의 굴욕) 아버지의 복수심으로 북벌 운동을 시작한 효종은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기 위해 청나라를 정벌해야 한다는 주장.

이런 효종에게 하멜은 간청한다. "폭풍우를 만나 낯선 땅에 오게 되어 부모, 처자식, 친구, 애인을 못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일본으로 보내 동포도 만나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울부짖었다고 해요. 

근데 효종이 '외국인을 국외로 내보내는 것은 관습이 아니므로 여기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며, 대신 너희들을 부양해 주겠다.' 그리고 왕은 우리더러 네덜란드 춤을 추게 하고 노래도 부르게 하고 우리들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보이도록 했다. 그리고 훈련도감(수도방위사령부)에 취직이 되게 됩니다. 이때 하멜이 조선의 군부대를 기록하게 된다. '화승총 한 자루씩과 화약, 총알 지급받았고 군사들은 봄에 3개월 가을에 3개월씩 훈련을 받는다." 군인들은 지급받은 총알 잃어버리면 곤장 5대를 맞았다. 군기가 빡셈.. 그리고 산성을 보수하는 사람은 그 산에 있는 스님들이였는데 그들도 전시에는 무장을 하는데 그들이 조선 군인중에 가장 막강한 힘을 소유하고 있었다. '각 읍에서는 주변 사찰에  있는 많은 승려들을 교대로 임명해서 산 속의 성채와 요새를 관리한다. 유사시에 이 승려들은 승군이 된다. 이들은 이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병사로 여겨지고 있다. ' 갑작스러운 전출명령 남한산성으로 간다. 왜? 청나라 사신으로부터 발각되지 않기위해서!! 

이건 국가 안보 상황이였다. 그런데 하멜 일행중 2명은 청나라 사신에게 가서 우리를 돌아갈수 있게 도와달라고 울부짖는다. 그런데 청나라 사신의 반응은 "오잉? 니들 뭐니?? " 그리고 청나라 사신은 뇌물을 먹고 입을 닫는다. 그리고 그 네덜란드 2명은 감옥에 갖히고 ... 끝 (죽었다) 그리고 하멜은 곤장 50대를 맞았다고 한다. 

 

하멜이 기록한 조선의 형벌

남편을 죽인 아내는 길가에 어깨까지 땅에 묻고, 양반을 제외하고 누구나 나무 톱으로 그녀가 죽을 때까지 한 번씩 목을 쳐야 한다. 남편이 아내를 죽였을 때 그럴 만한 이유가 증명될 경우에는 처벌되지 않는다. 

노예가 주인을 죽이면 심한 고문을 받다가 죽는다. 주인은 사소한 과실에 대해서도 노비를 죽일 수 있다. 

절도범은 보통 발바닥을 때려서 서서히 죽게 한다. 

"이 끔찍한 형벌기록이 사실일까?? 조선에서 일이난일일까? 일본에서 일어난일일까? "

 

그리고 하멜은 전라도 귀양간다. 그리고 왕도 효종에서 현종으로 바뀐다. 그리고 하멜 일해은 방치되고 조선에서 기근이 시작되고 수천명이 굶어서 죽어가고 외국에서 온 하멜을 챙겨줄 사람은 없고 하멜은 여수쪽으로 보내주고 다른 일행은 순천, 남원 등으로 보내지고 마음씨 나쁜 사또를 만나서 고생을 엄청 하게 되고 항상 탈출할 기회만 엿본다. 

조선에 온지 13년째... 관리도 소홀하고.. 하멜은 모은 돈으로 배를 사게 되고 .. 동네 사람들을 술도 먹이고 일찍 제우고 그렇게 그리고 하멜과 일행 8명은 그 배를 타고 조선을 탈출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그렇게 일본에 도착하게 되고 

 

그리고 일본 관리는 하루동안 54가지의 질문을 하게 된다. "너희들은 어느나라 사람인가? 제주에서 한양까지 거리는? 조선인 무기는 어떠한가? 전라도에서 얼마나 살았나? 식량과 의복은? 거기서 죽은 사람은? 등... " 이것이 조선과 일본의 다른점 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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